[뮤지컬 마제스티 ] 왕관없는 황제(실존인물, 트라이아웃, 노턴1세)
[뮤지컬 마제스티 ] 저는 처음에 제목만 보고 판타지 뮤지컬인 줄 알았습니다. '마제스티'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이 왕관이나 궁전같은 전형적인 왕족 이야기를 떠올리게 했거든요. 그런데 찾아보면 찾아볼수록 이건 완전히 다른 결의 작품이었습니다. 실존 인물에서 출발한 창작뮤지컬이고, 그 인물이 하필 스스로 황제라고 선언했던 사람이라는 점에서 궁금증이 점점 커졌습니다.
26 뮤지컬 마제스티_메인 포스터. ⓒ더블케이엔터테인먼트
공연은 서울 대학로 NOL 씨어터 우리카드홀에서 2026년 10월 25일부터 11월 15일까지 진행됩니다.
황제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실존 인물이었다
《마제스티》의 모티프(motif)가 된 인물은 조슈아 에이브러햄 노턴입니다. 모티프란 창작 작품에서 아이디어나 이야기의 출발점이 되는 소재나 인물을 뜻합니다. 노턴은 19세기 샌프란시스코에서 실제로 스스로를 '미합중국의 황제이자 멕시코의 수호자'로 선언했던 인물입니다. 군복에 깃털 모자를 쓰고 거리를 활보하며 칙령(勅令)을 내렸는데, 칙령이란 군주나 권력자가 공식적으로 내리는 명령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점 당시 샌프란시스코 시민들이 그를 비웃으면서도 어느 순간부터 진짜 황제처럼 대우했다는 사실입니다.
역사적 기록에 따르면 노턴이 식당에 가면 공짜 식사를 제공받았고, 그가 발행한 사설 화폐가 지역 상인들 사이에서 실제로 통용되기도 했습니다. 왕관도 없고 군대도 없는 황제가 어떻게 사람들의 신뢰를 얻었는지, 저는 그 지점이 가장 궁금했습니다. 이에 대해 미국역사학회 (AHA)노턴 1세 항목을 살펴보면, 그가 인종차별에 반대하고 이민자들을 옹호하는 칙령을 여러 차례 발표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단순한 괴짜가 아니라 사회적 약자 편에 서 있던 사람이었다는 겁니다. [출처:미국역사학회 (AHA)]
뮤지컬은 1869년 골드러시가 식어버린 샌프란시스코를 배경으로 삼습니다. 골드러시(Gold Rush)란 19세기 중반 캘리포니아에서 금이 발견되면서 수십만 명이 몰려들었던 역사적 현상을 뜻합니다. 그 열기가 꺼진 자리에 남은 것은 실업과 임금 체불, 그리고 이민자를 향한 혐오였습니다. 작품은 그 시대를 배경으로 노턴이라는 인물을 통해 오늘날과 너무나 닮은 질문을 던집니다. 사실 이 부분이 저를 가장 끌당긴 지점이었습니다.
트라이아웃이라는 방식, 이게 왜 중요한가
이번 공연은 정식 본공연이 아닙니다. 트라이아웃(tryout)이라고 부르는 시범공연 형태로 진행됩니다. 트라이아웃이란 대극장 본공연 진입 전에 실제 관객 앞에서 작품을 선보이며 관객의 반응을 바탕으로 작품을 수정하고 보완하는 단계를 말합니다. 쉽게 말해 완성된 작품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완성을 향해 가는 과정을 함께 경험하는 무대입니다.
처음엔 저도 트라이아웃이라는 말이 '아직 덜 만들어진 거 아닌가?'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이 방식은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 같은 해외 대형 뮤지컬 시장에서도 오래전부터 활용되는 제작 과정 방식입니다. 관객 반응을 직접 확인하고 음악과 서사를 조율한 뒤에야 본공연으로 확장하는 것이죠. 오히려 제작진이 작품을 완성해 가기 위한 중요한 단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번 《마제스티》는 문화체육관광부 후원, 예술경영지원센터 주최의 '2026 대형 뮤지컬 시범공연 지원' 사업 선정작입니다. 이 사업은 대극장 무대화를 목표로 하는 국내 창작 뮤지컬의 시범공연을 지원하고, 작품의 경쟁력과 시장성, 제작 실행력 등을 검토하는 사업입니다 (출처 :예술경영지원센터 공식 공고)
트라이아웃 공연을 관람할 때 기억해 두면 좋은 포인트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완성된 결과물이 아닌 발견하고 있는 작품을 보는 것임을 전제로 감상한다.
- 음악, 연출, 배우의 해석 중 어떤 요소가 가장 강하게 작동하는지 관찰한다.
- 본공연과 어떻게 달라질지 상상해 보며 관객으로서의 시각으로 작품을 감상한다.
- 9인조 라이브 오케스트라가 만드는 사운드를 소극장 규모에서 직접 느껴본다.
9인조 라이브 오케스트라가 참여한다는 점은 이번 트라이아웃의 눈여겨볼 만한 요소입니다. 실제 무대에서 라이브 연주가 작품의 음악과 분위기를 어떻게 만들어가는지 살펴보는 것도 하나의 관람 포인트가 될 것 같습니다.
캐스팅이 이 작품에서 유독 중요한 이유
《마제스티》에서 노턴 역을 맡은 배우는 엄기준과 박재윤입니다. 더블 캐스팅(double casting)이란 같은 역할을 두 배우가 나눠 맡는 방식으로, 각자의 해석에 따라 동일한 캐릭터가 전혀 다른 인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제 경험상 더블 캐스팅이 인상적인 작품은 두 번 관람했을 때 서로 다른 매력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노턴이라는 캐릭터는 유머와 카리스마, 그리고 진지한 인간미가 동시에 존재하는 인물입니다. 엄기준은 《그날들》, 《레베카》, 《광화문 연가》 등에서 보여준 무대 장악력이 워낙 강렬한 배우라 노턴의 황제적 기개를 어떻게 구현할지 기대됩니다. 반면 박재윤은 《베르테르》, 《드라큘라》 등의 작품에서 감정의 섬세한 표현을 보여준 배우인 만큼, 노턴이 가진 고독과 인간적인 면을 어떻게 그려낼지 궁금합니다.
수습기자 아서 역의 박정원과 김우석도 눈여겨볼 지점이 있습니다. 아서는 노턴을 기삿거리로만 보다가 점점 그 안에서 진짜 인간을 발견하는 인물입니다. 이 변화의 밀도를 얼마나 설득력 있게 그려내느냐가 작품 전체의 서사 구조(narrative structure)를 좌우합니다. 서사 구조란 이야기가 어떤 순서와 방식으로 전개되는지를 뜻하는 개념입니다. 솔직히 저는 아서의 시선 변화가 노턴보다 더 극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황제보다 황제를 바라보는 사람의 이야기이기도 하니까요.
편집장 모리스(이승현·이경욱)와 경관 오닐(양승리·우재하)도 개인적으로 궁금한 인물입니다. 두 사람은 각각 언론과 공권력을 통해 노턴과 부딪히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기대됩니다. 특히 모리스와 연결되는 황색저널리즘(yellow journalism)이 어떻게 그려질지도 눈여겨보고 싶습니다. 황색저널리즘이란 사실을 전달하는 것보다 자극적인 내용이나 선정적인 보도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려는 언론 행태를 뜻합니다.
지금도 자극적인 뉴스 하나가 사람들의 생각을 빠르게 바꾸는 경우가 있는데, 19세기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이런 상황이 어떻게 나타났을지 궁금합니다. 노턴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언론과 공권력을 거치면서 어떻게 달라지는지도 이번 공연에서 살펴보고 싶은 부분입니다. 결국 노턴이 사람들 사이에서 어떤 존재로 자리 잡게 되는지가 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부분이 될 것 같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뮤지컬 마제스티는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재현한 작품인가요?
A. 아닙니다. 실존 인물 노턴 1세의 삶을 모티프로 삼았지만, 가상의 인물과 사건을 더해 만든 창작 뮤지컬입니다. 역사 다큐멘터리라기보다는 실제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 작품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습니다. 수습기자 아서나 교정원 마르타 같은 주요 인물들은 실존 인물이 아닙니다.
Q. 트라이아웃 공연이라 완성도가 낮은 것 아닌가요?
A. 트라이아웃은 '미완성'이 아니라 '검증 중'인 단계입니다. 실제 관객 앞에서 공연하며 반응을 확인하고 완성도를 높여가는 과정으로, 브로드웨이에서도 널리 쓰이는 방식입니다. 이번 공연은 9인조 라이브 오케스트라와 10명의 앙상블이 함께하는 규모로 진행되기 때문에 완성도 측면에서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
Q. 김수로가 배우와 프로듀서를 동시에 맡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가요?
A. 김수로는 이번 작품에서 프로듀서와 배우를 함께 맡았습니다. 제작에 참여하는 동시에 갤러해드라는 캐릭터로 직접 무대에 오른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제작진으로서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과 배우로서 캐릭터를 표현하는 모습을 한 작품에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갤러해드라는 인물이 어떻게 그려질지도 궁금합니다.
Q. 공연 관람 등급은 어떻게 되나요?
A. 초등학생 이상 관람 가능한 작품입니다. 러닝타임은 인터미션 20분을 포함해 총 160분입니다.
아직 공연 전이라 무대를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자료를 하나씩 살펴볼수록 이 작품을 트라이아웃 단계에서 만나는 것이 오히려 특별한 경험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황제’라는 제목만 보면 거창한 스펙터클을 먼저 떠올릴 수도 있지만, 저는 오히려 ‘왜 사람들은 왕관도 없는 그를 황제로 받아들였을까?’라는 질문을 가지고 공연을 보고 싶습니다. 이 질문을 생각하면서 본다면 노턴의 이야기가 조금 다르게 다가올 것 같습니다. 공연을 직접 관람한 뒤에는 실제 무대가 어땠는지 다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