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헬스키친" 키친 이야기 아님(한국초연, 성장서사, 앨리샤키스)

뮤지컬"헬스키친" 주방 요리 관련 뮤지컬 아니였습니다. 찾아보면 찾아볼수록 이건 완전히 다른 이야기였습니다. 앨리샤 키스의 음악과 성장기에서 영감을 받은 뮤지컬이고, 브로드웨이 개막 2년 만에 비영어권 최초 라이선스 공연이 한국에서 열린다는 사실이 꽤 흥미로웠습니다. 이 글에서는 제가 작품을 파악하면서 겪은 혼란과 발견을 나눠보겠습니다.


실제 헬스키친의 9번가 거리 사진

[실제 헬스키친의 9번가 거리 사진]


헬스키친이라는 이름이 낯설었던 이유

처음 《헬스키친》이라는 제목을 봤을 때는 음식점 이름처럼 느껴졌습니다. 찾아보니 ‘헬스키친’은 뉴욕 맨해튼의 실제 지역명이었고, 이름의 유래에는 여러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그중에는 한 신참 경찰관이 이곳을 보고 “지옥 같다”고 말하자, 베테랑 경찰관이 “지옥은 온화한 곳이고 여기는 지옥의 부엌”이라고 답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다만 이는 여러 유래설 가운데 하나입니다. (출처: 뉴욕공립도서관) 그런데 더 흥미로웠던 건 앨리샤 키스와 이 지역의 관계였습니다. 그녀는 어린 시절 헬스키친에서 성장했고, 자신의 삶과 음악, 그곳의 커뮤니티에서 영감을 받아 이 뮤지컬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제목을 알고 나니 단순한 지역명이 아니라 그녀의 성장 배경을 담은 이름처럼 느껴졌습니다. (출처: HELL’S KITCHEN 공식 사이트)

이 지역명이 뮤지컬 제목이 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앨리샤 키스 본인이 실제로 1990년대 이 동네에서 자랐고, 그 거리의 에너지와 소음이 그녀의 음악적 뿌리가 됐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제목이 낯설게 느껴졌다면, 오히려 그게 정상입니다. 공연 정보를 제대로 찾아보기 전까지 저도 동네 이름인지조차 몰랐으니까요.


주크박스 뮤지컬인데 단순한 콘서트가 아닌 이유

이 작품은 주크박스 뮤지컬(Jukebox Musical)의 형식을 취합니다. 주크박스 뮤지컬이란 기존에 발표된 대중음악을 이야기의 흐름 안에 녹여 넣는 뮤지컬 형식을 말합니다. 아바의 음악을 활용한 '맘마미아'나 퀸의 노래를 재구성한 '위 윌 록 유' 같은 작품들이 대표적입니다.

그런데 '헬스키친'은 거기서 한 발 더 나갑니다. 'Fallin'은 앨리 부모의 격렬했던 사랑을 회상하는 장면에서 흐르고, 'If I Ain't Got You'는 아버지 데이비스가 딸에게 보내는 감정으로 재배치됩니다. 그리고 뉴욕이라는 도시 자체를 예찬하며 막이 내릴 때 'Empire State of Mind'가 울려 퍼집니다. 제가 이 구성을 알게 됐을 때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익숙한 노래가 전혀 다른 감정으로 들릴 수 있다는 것, 그게 이 작품의 가장 영리한 지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여기에 'Kaleidoscope' 같이 이 뮤지컬을 위해 새롭게 쓰인 신곡들도 포함됩니다. 그러니 앨리샤 키스의 히트곡을 그냥 나열하는 콘서트형 공연을 기대한다면 다소 다를 수 있습니다. 음악이 드라마의 언어로 기능한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한국 초연 캐스팅도 눈길을 끕니다. 앨리샤 키스 본인이 보컬의 미세한 표현까지 직접 디렉팅하며 캐스팅 과정에 깊이 관여했다고 합니다. 주요 배역 구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앨리 역: 손승연, 김수하, 박지원 — 음악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찾아가는 17세 소녀
  2. 저지 역: 박혜나, 최현선 — 과보호하는 싱글맘으로 앨리와 갈등의 핵심 축
  3. 미스 라이자 제인 역: 정영주, 김영주 — 앨리의 피아노 선생님이자 예술적 멘토
  4. 데이비스 역: 케이윌, 테이 — 떠돌이 뮤지션이자 앨리의 아버지
  5. 넉 역: 박광선, 한승윤 — 앨리가 사랑에 빠지는 페인트공 청년

성장 서사와 자전적 모티브가 섞인 방식

작품을 파악하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이것이 앨리샤 키스의 자서전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자전적 모티브(autobiographical motif)란 창작자가 자신의 실제 경험에서 소재를 가져와 허구의 이야기로 발전시키는 방식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주인공 앨리는 앨리샤 키스 본인이 아니라, 그녀의 기억과 감정을 재료로 새롭게 빚어낸 인물입니다.

이 차이를 알고 나면 오히려 작품이 더 궁금해집니다. 어떤 경험은 그대로 가져왔고, 어떤 부분은 새롭게 만들어냈는지 추적하는 재미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앨리는 어머니 저지의 과보호 속에서 답답함을 느끼고, 라이자 제인이라는 피아노 선생님을 만나면서 음악의 세계에 눈을 뜹니다. 페인트공 청년 넉과의 첫사랑도 이야기의 중요한 축을 이룹니다.

성장 서사(coming-of-age narrative)라는 말도 이 작품에서 빠질 수 없습니다. 성장 서사란 인물이 여러 갈등과 선택을 겪으면서 자신의 가치관을 형성해 가는 이야기 구조를 뜻합니다. 단순히 주인공이 성공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는지가 핵심입니다. 이 작품이 단순한 성공담과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도 거기 있다고 생각합니다.

뮤지컬 평론 매체들의 반응을 보면(출처: GS아트센터 공연 소개), 32명의 배우들이 노래와 연기, 춤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며 장면마다 안정감을 만들어냈다는 평가가 이어졌습니다. 특히 안무가 카밀 A. 브라운(Camille A. Brown)이 설계한 움직임은 아프리칸 디아스포라(African Diaspora) 문화의 정서를 담아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프리칸 디아스포라란 아프리카에서 강제 이주되거나 자발적으로 이동한 흑인 공동체의 문화적 유산을 총칭하는 개념으로, 이 작품의 R&B와 힙합 기반 안무에 그 흔적이 진하게 배어 있습니다.

공연 전에 알아두면 더 잘 보이는 것들

저는 공연을 보기 전에 미리 곡 목록을 한 번 훑어보는 편입니다. 앨리샤 키스의 음악을 거의 모르는 상태로 들어가는 것과, 주요 곡의 분위기를 어느 정도 알고 들어가는 것은 몰입감이 꽤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에서 흘러나오는 주요 곡들을 미리 파악해 두면 도움이 됩니다.

러닝타임(running time)은 160분으로, 인터미션(intermission) 20분이 포함됩니다. 러닝타임이란 공연이 시작해서 끝날 때까지 걸리는 총 시간을 말하며, 인터미션은 1막과 2막 사이의 휴식 시간을 뜻합니다. 160분이면 꽤 긴 편이니 공연 전 체력 관리를 신경 쓰는 것도 좋습니다. 관람 등급은 8세 이상이며 미취학 아동은 입장이 불가합니다.

공연은 GS아트센터에서 2026년 7월 24일부터 11월 8일까지 이어집니다. 이번 한국 초연은 브로드웨이 개막 이후 약 2년 만에 성사된 비영어권 최초 라이선스 공연으로, 글로벌 라이선스 프로젝트의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라이선스 공연이란 원작 제작사로부터 공연 권리를 계약해 현지 언어와 배우로 재구성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브로드웨이 원작의 감각을 가장 빠르게 접할 수 있는 무대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앨리샤 키스는 토니 어워즈(Tony Awards) 13개 부문 최다 노미네이트, 그래미 어워드(Grammy Awards) 베스트 뮤지컬 시어터 앨범상 수상이라는 이력 외에도, 한국 프로덕션의 보컬 디렉팅에 직접 참여했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국내 뮤지컬 팬들의 기대를 높이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앨리샤 키스가 이 작품에 13년을 쏟아부었다는 사실이 단순한 홍보 문구가 아니라 실제 작품의 완성도로 증명되는지 직접 확인하고 싶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앨리샤 키스 음악을 잘 모르면 헬스키친을 즐기기 어렵나요?

A.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Fallin'이나 'If I Ain't Got You' 같은 곡을 미리 알고 가면 장면의 감정이 더 선명하게 들립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음악을 이야기의 언어로 활용하는 구조라, 처음 듣는 곡도 장면 안에서 자연스럽게 이해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공연 전날 대표곡 몇 곡만 들어두면 충분합니다.

Q. 브로드웨이 원작과 한국 초연은 어떻게 다른가요?

A. 한국 초연은 라이선스 공연으로, 연출가 마이클 그라이프와 안무가 카밀 A. 브라운의 원작 크리에이티브 팀이 협력하는 구조로 제작됐습니다. 국내 협력연출 오루피나, 국내 협력음악감독 양주인, 국내 협력안무 강동주가 합류해 한국 배우들에 맞는 해석을 더했습니다. 언어는 한국어이지만, 앨리샤 키스가 보컬 디렉팅에 직접 참여해 음악적 디테일을 원작과 가깝게 유지했습니다.


제목 때문에 지나쳤다면 한 번 더 찾아볼 만한 공연입니다. 앨리샤 키스의 팬이 아니더라도, 음악이 한 사람의 방향을 어떻게 바꾸는지에 관심이 있다면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공연 기간이 11월 8일까지인 만큼 시간 여유를 두고 원하는 캐스팅 조합으로 예매 일정을 잡는 것이 현실적으로 나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