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서편제"] 소리를 위해 무엇까지 포기할 수 있을까 (판소리,선택,가족)
뮤지컬 《서편제》를 보기 전까지 판소리를 어렵고 낯선 음악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공연을 보고 난 뒤 제 머릿속에 남은 질문은 판소리가 아니었습니다.‘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위해 주변 사람에게 얼마나 많은 상처를 주고 있는가.’ 판소리를 소재로 한 창작 뮤지컬이라고 들었지만, 막상 공연을 보고 나니 제가 마주한 이야기는 그보다 훨씬 무거웠습니다. 예술을 향한 한 사람의 집념과 그 안에서 상처받는 가족의 이야기가 겹쳐 있었기 때문입니다.
판소리가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던 이유
뮤지컬《서편제》를 처음 접한다면 ‘판소리를 잘 몰라도 공연을 이해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저 역시 비슷했습니다.판소리는 조선 시대부터 이어져 온 한국의 전통 성악 장르로, 소리꾼이 북 반주에 맞춰 노래와 이야기를 풀어가는 형식입니다. 노래뿐 아니라 연기와 서사가 함께 어우러지는 것이 특징입니다.그런데 《서편제》에서 판소리는 단순히 전통적인 분위기를 만들기 위한 음악으로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인물의 감정을 드러내는 중요한 표현 방식으로 사용됩니다.(출처:국악사전)
특히 송화가 소리를 내는 장면에서는 ‘판소리를 잘한다’는 생각보다 ‘왜 지금 이 사람이 이런 소리를 내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인물의 삶을 알고 나면 같은 소리도 전혀 다르게 들립니다.저에게는 이 부분이 가장 의외였습니다. 공연을 보기 전에는 판소리를 이해해야 작품을 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인물의 감정을 따라가다 보니 판소리가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오는 것이 득음(得音)입니다. 득음은 소리꾼이 오랜 수련을 거쳐 자신의 소리를 얻는 경지를 뜻합니다. 유봉에게 득음은 단순한 기술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그는 송화가 최고의 소리를 얻기를 원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믿는 예술의 길을 가족에게까지 강요합니다. 문제는 그 집념이 결국 가족에게 상처로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세 인물을 놓고 보면 관계가 조금 더 선명해집니다.
1.유봉에게 판소리는 삶의 전부에 가깝습니다.
2.송화에게 소리는 자신의 상처와 삶을 표현하는 방식이 됩니다.
3.동호는 그 세계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지만, 결국 그 소리와 완전히 무관한 삶을 살지는 못합니다.
세 사람을 이렇게 바라보고 나니 무대 위의 소리 장면도 다르게 보였습니다. 처음에는 음악을 들었다면, 나중에는 그 음악 뒤에 있는 사람을 보게 됐습니다.
선택과 그 뒤에 남는 것
뮤지컬《서편제》를 보면서 처음에는 유봉의 행동이 일방적으로 잘못됐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술을 위해 가족에게 고통을 감수하게 만드는 모습이 너무 가혹하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끝까지 따라가다 보니 판단이 조금 복잡해졌습니다. 유봉에게도 자신이 믿는 예술을 지키고, 송화에게 최고의 소리를 남겨주고 싶다는 나름의 진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그의 행동이 정당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흥미롭게 느낀 부분은 바로 그 지점이었습니다. 좋은 의도가 있다고 해서 다른 사람에게 준 상처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동호의 선택도 비슷했습니다. 그는 자신을 옭아매는 세계에서 벗어나려고 합니다.
처음에는 저도 ‘떠나는 것이 곧 자유’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공연을 보고 나서는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동호가 떠났다고 해서 그 시간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떠난 뒤에도 그가 지나온 시간과 가족의 기억은 계속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동호의 이야기는 단순히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떠난 뒤에도 무엇이 남는가에 대한 이야기처럼 느껴졌습니다.
송화의 소리에 남은 ‘한’ 이 작품을 이해하면서 빼놓기 어려운 정서가 한(恨)입니다. 한은 단순히 슬프거나 화가 난 상태를 뜻하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풀리지 않은 감정과 억울함, 체념과 그리움 같은 여러 감정이 복합적으로 쌓여 있는 한국의 전통적인 정서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송화의 소리를 듣고 있으면 이 ‘한’이라는 단어가 왜 자주 언급되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녀의 삶에는 원하는 것을 마음껏 선택하기 어려웠던 시간과 가족에 대한 감정, 소리를 향한 집념이 함께 얽혀 있습니다. 그래서 소리는 단순한 음악이 아니라 그녀가 살아온 시간을 표현하는 방식처럼 느껴집니다.(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저 역시 공연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제 주변을 돌아보게 됐습니다. 가족 사이에서도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선택이 다른 사람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습니다. 더 어려운 것은 그 상처가 반드시 나쁜 의도에서 시작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누군가는 사랑이라고 생각하고, 누군가는 책임이라고 생각하며, 또 다른 누군가는 그것을 희생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서편제》가 불편하게 다가온 이유도 여기에 있었습니다. 누구 하나를 단순한 악인으로 만들고 끝나는 이야기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가족이라는 무대
예술을 위해 가족에게 상처를 줘도 괜찮을까요. 이 질문에 쉽게 답을 내리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 이 작품을 아직 보지 않은 사람일 겁니다. 뮤지컬 《서편제》는 그 질문에 명확한 답을 주지 않습니다. 대신 각 인물이 각자의 방식으로 그 질문과 부딪히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주목할 개념이 창극(唱劇)과의 차이입니다. 창극이란 판소리를 기반으로 한 전통 연극 형식으로, 여러 명의 소리꾼이 역할을 나눠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뮤지컬 《서편제》는 창극이 아닌 현대 뮤지컬 형식을 택하면서도 판소리의 정서와 어법을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이 점이 이 작품을 단순한 전통 복원이 아닌, 현대 관객과 전통 정서 사이의 다리로 만들어 준 요소라고 생각합니다.(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022년 공연은 2010년 초연 이후 다섯 번째 시즌이자 마지막 시즌으로 발표됐습니다. 원작 사용 기간이 만료되면서 12년간 이어진 이 작품의 공식 무대가 마무리된 것입니다. (출처: 연합뉴스) 마지막 시즌이라는 사실을 알고 보니 무대 위 소리 하나하나가 더 다르게 들렸습니다. 이걸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게 아직도 아쉽습니다.
한국 전통 공연 예술의 흐름을 이해하고 싶다면, 국립극장이나 국립창극단의 공식 자료도 함께 살펴보는 것을 권합니다. (출처: 국립극장) 같은 이야기가 창극과 뮤지컬이라는 서로 다른 형식 안에서 어떻게 달라지는지 비교해 보면, 《서편제》라는 작품이 왜 이렇게 오래 사랑받았는지 조금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FAQ)
Q. 판소리를 전혀 모르는데 뮤지컬 《서편제》를 즐길 수 있을까요?
A. 네. 판소리를 잘 몰라도 이야기를 따라가는 데 큰 어려움은 없습니다. 판소리에 대한 지식보다 인물들이 왜 그런 선택을 하는지에 집중해서 보면 됩니다.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소리 장면이 인물의 감정과 자연스럽게 이어지기 때문에, 처음에는 낯설었던 판소리도 조금씩 가깝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Q. 뮤지컬 《서편제》는 영화나 원작 소설과 어떻게 다른가요?
A. 세 매체 모두 유봉, 송화, 동호라는 인물 구조는 공유하지만, 각각의 표현 방식이 다릅니다. 영화가 시각적 정서와 여백을 강조한다면, 뮤지컬은 판소리를 직접 무대 언어로 활용해 인물의 감정을 더 즉각적으로 전달합니다. 공연을 본 뒤 원작 소설이나 임권택 감독의 영화와 비교해 보면 같은 이야기가 얼마나 다르게 읽히는지 경험할 수 있습니다.
Q. 뮤지컬 《서편제》의 핵심 주제가 판소리인가요, 아니면 가족 이야기인가요?
A. 판소리와 가족 이야기가 서로 따로 떨어져 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판소리는 인물의 감정을 표현하는 중요한 수단이고, 그 안에서 가족 사이의 선택과 갈등, 상처가 드러납니다. 그래서 공연을 보고 난 뒤에는 판소리 자체보다 그 소리를 둘러싼 사람들의 관계가 더 오래 기억에 남을 수 있습니다. 예술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가족을 위해 무엇을 선택하고, 그 결과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뮤지컬 《서편제》를 보고 나서 저는 한 가지를 더 조심하게 됐습니다. 누군가의 선택을 쉽게 판단하는 일입니다. 유봉의 선택도, 동호의 선택도 그 결과만 놓고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무엇을 지키려고 했는지까지 생각해 보면 조금 다른 모습이 보입니다. 그래서 공연이 끝난 뒤에는 ‘누가 옳았을까’보다 ‘그 선택으로 무엇이 남았을까’라는 질문이 더 오래 남았습니다. 판소리가 낯설었던 저에게 《서편제》는 단순히 전통음악을 알아가는 작품이 아니었습니다. 가족을 위해 내린 선택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상처를 남길 수 있는지 생각하게 만든 작품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