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뮤지컬 ] '종의 기원' : 두 명의 한유진, 원작 비교, 관람 포인트
뮤지컬 《종의 기원》이라니, 생물학 수업 같은 느낌이 먼저 들었거든요. 그런데 정유정 작가 원작에 심리 스릴러라는 설명을 보고 나서 완전히 다른 작품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2026년 세 번째 시즌을 맞은 이 작품, 저를 가장 오래 붙잡아 둔 건 '한 사람을 두 배우가 동시에 연기한다'는 설정이었습니다.
두 명의 한유진, 이게 더블캐스팅과 다른 이유
처음 이 공연을 찾아봤을 때 더블캐스팅(Double Casting)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더블캐스팅이란 같은 역할을 두 명의 배우가 회차별로 번갈아 맡는 방식입니다. 뮤지컬에서는 아주 흔한 방식이죠. 그런데 《종의 기원》은 달랐습니다. 한유진 파랑과 한유진 빨강, 두 배우가 같은 무대에 동시에 올라 하나의 인물을 함께 표현합니다.
이걸 연출 방식으로 표현하자면 '분열된 자아의 외재화(Externalization of Divided Self)'에 가깝습니다. 쉽게 말해, 한 인물의 머릿속 충돌을 관객 눈앞에서 두 사람의 실제 관계처럼 보여주는 방식입니다. 소설에서는 독자가 문장을 따라가며 한유진의 생각을 직접 읽지만, 무대에서는 두 배우의 움직임과 대사로 드러나는 셈입니다.
2026 시즌에는 한유진 역에만 무려 8명의 배우가 참여합니다. 파랑 역에 기세중, 이종석, 김이후, 신은총이, 빨강 역에 김려원, 변희상, 정재환, 박상혁이 이름을 올렸습니다. 어떤 페어(Pair)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한유진의 분위기가 달라진다는 게 이 작품의 특이한 재관람 포인트입니다. 저는 이런 구조가 꽤 영리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동일한 대사와 장면인데도 두 배우의 호흡에 따라 전혀 다른 심리극이 펼쳐질 테니까요.
개인적으로 가장 궁금한 건 두 한유진이 서로를 바라보는 장면들입니다. 같은 인물인데 서로를 마주보고 반응한다는 것, 그 설정 자체가 이미 관객에게 불편한 질문을 하나 던집니다. 내가 보는 나와 실제 나는 같은 사람인가, 하는 질문 말입니다.
원작 소설과 뮤지컬, 무엇이 달라졌을까
정유정 작가의 소설 《종의 기원》은 2016년 출간 이후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해외 판권 계약도 이어진 작품입니다. 2018년 연합뉴스에 따르면 당시 미국·영국·프랑스 등 16개국에 판권이 수출됐습니다.(출처: 연합뉴스). 주인공 한유진이 어느 날 아침 어머니의 죽음을 발견하고 사건의 진실을 스스로 추적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본성과 조금씩 마주하게 됩니다. 제가 소설에서 가장 눈여겨본 부분도 사건보다 한유진의 내면이었습니다. 1인칭으로 그의 생각을 따라가다 보면 불편한 감정까지 그대로 따라오게 됩니다.
하지만 무대는 소설과 다릅니다. 한유진의 복잡한 내면을 두 명의 배우가 나눠 표현한다는 점이 눈에 들어옵니다. 소설에서 읽었던 생각들이 무대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바뀔지 궁금합니다.
특히 95분, 인터미션 없이 공연된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한 권의 소설에서 어떤 장면을 남기고 무엇을 덜어냈을지, 그 선택이 공연의 해석과도 연결될 것 같습니다. 이런 구성과 각색을 고민하는 과정을 드라마투르기(Dramaturgy)라고 합니다.
원작을 읽었다면 소설과 무대의 차이를 비교하면서 볼 수 있고, 읽지 않았다면 배우와 음악을 통해 한유진의 이야기를 처음 만날 수 있습니다. 저는 두 경우가 꽤 다른 경험이 될 것 같아, 공연을 본 뒤 원작과 다시 비교해보고 싶습니다.
공연을 보기 전 참고할 2026 시즌 기본 정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공연 기간: 2026년 6월 23일 ~ 9월 20일
- 공연장: 동덕여자대학교 공연예술센터 코튼홀 (대학로)
- 러닝타임: 95분 (인터미션 없음)
- 관람연령: 중학생 이상
- 티켓 가격: R석 77,000원, S석 55,000원
불편한 작품일까, 관람 전에 솔직하게 따져봤습니다
심리 스릴러(Psychological Thriller)라는 표현 때문에 관람을 망설이는 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심리 스릴러는 공포 자체보다 인물의 불안과 긴장, 심리적인 변화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장르입니다. 그래서 《종의 기원》이 무섭냐고 묻는다면 저는 ‘공포’보다는 ‘불편함’에 더 가까울 것 같습니다.
제가 오히려 궁금한 것은 한유진이 처음부터 그런 사람이었는지입니다. 환경이 그를 그렇게 만든 것인지, 아니면 결국 자신의 선택이 그를 만든 것인지 생각하게 됩니다. 같은 인물을 두 배우가 표현한다는 설정도 이런 질문과 연결해서 보면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이번 시즌에도 이기쁨 연출, 김윤영 작가, Brandon Lee·강하님 작곡가 등 주요 창작진이 초연과 재연에 이어 참여합니다.
다만 저는 아직 이 공연을 직접 보지는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찾아본 자료를 기준으로 보면 밝고 유쾌한 뮤지컬보다는 배우의 감정과 인물의 심리를 따라가는 작품에 가까워 보입니다. 그래서 실제 공연을 보고 나면 제가 예상했던 ‘불편함’이 어떤 느낌이었는지 직접 확인해보고 싶습니다.
9월 20일 마지막 공연을 앞두고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제가 이 공연에서 가장 오래 생각하게 될 것은 아마 사건의 결말이 아니라 한유진이라는 사람일 것 같습니다. 관람을 고민하고 계신다면 남은 회차와 원하는 배우 조합을 먼저 확인해보시길 권합니다. 같은 작품이라도 어떤 페어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다른 경험이 될 수 있는 공연이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