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웃는 남자"] 직접 보고 느낀 매력과 아쉬운 점 (원작, 넘버, 무대,작품)
뮤지컬 《웃는 남자》는 개막 한 달 만에 누적 관객 10만 명을 돌파했습니다. 처음 이 수치를 봤을 때 솔직히 ‘창작 뮤지컬이 이 정도면 대단한데?’ 싶었습니다. 그런데 직접 공연장 문을 나서고 나서야 그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습니다. 벌써부터 2028년 10주년 공연이 기다려질 만큼 인상적인 작품이었습니다. 결국 이 작품에서 오래 기억에 남은 것은 화려한 무대만이 아니었습니다.
[1928년 영화 《웃는 남자》에서 그윈플렌 역을 맡은 콘라트 파이트(Conrad Veidt)]
빅토르 위고 원작 《웃는 남자》, 뮤지컬로 어떻게 압축했을까
빅토르 위고(Victor Hugo)의 소설 《웃는 남자(L'Homme qui rit)》는 천 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입니다. 17세기 영국을 배경으로 신분 제도와 빈부 격차라는 당시 사회의 모순을 깊이 있게 다룬 작품입니다. 이 방대한 이야기를 2막짜리 뮤지컬로 압축한다는 게 쉽지 않았을 거라는 건 관람 전부터 짐작했습니다.
극의 출발점은 콤프라치코스(Comprachicos)라는 인신매매 집단입니다. 아이들을 납치해 신체를 훼손한 뒤 귀족들의 유흥 도구로 팔던 이들은 그윈플렌의 비극을 만들어낸 존재입니다. 위고는 이 설정을 통해 권력이 인간을 어떻게 소모품처럼 다루는지를 보여줍니다. 그윈플렌의 찢긴 입도 단순한 신체적 기형으로만 보이지 않았습니다. 누군가에 의해 강제로 만들어진 얼굴이기에, 그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까지 보여주는 장치처럼 느껴졌습니다.뮤지컬은 이 복잡한 구도를 개막 직후부터 빠르게 보여줍니다. 폭풍우 속 배가 침몰하는 장면과 눈보라 치는 해안에 홀로 남겨진 아이가 이어집니다. 짧은 시간 안에 관객이 작품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도록 긴 설명 대신 시각적인 장면으로 보여주는 방식이 개인적으로는 꽤 영리하게 느껴졌습니다. EMK뮤지컬컴퍼니가 5년의 제작 기간과 175억여 원의 제작비를 투입했다는 사실도 이 장면을 보고 나니 조금은 이해됐습니다.
귀에 박히는 넘버, 〈그 눈을 떠〉만 있는 건 아닙니다
공연이 끝나고 집에 오는 지하철 안에서 저도 모르게 〈그 눈을 떠〉를 흥얼거리고 있었습니다. 공연이 끝난 뒤에도 노래가 머릿속에 남아 있다는 것, 그게 뮤지컬 넘버가 가진 힘인가 싶었습니다. 이 작품의 음악은 프랭크 와일드혼(Frank Wildhorn)이 맡았습니다.
제가 느끼기에 와일드혼의 음악은 서정적인 멜로디가 흐르다가도 감정을 한꺼번에 터뜨리는 순간이 분명했습니다. 〈그 눈을 떠〉는 그윈플렌이 상원 의회에서 귀족들을 향해 호소하는 장면에 등장하는 넘버입니다. 노래라기보다 한 편의 연설처럼 가사가 관객에게 직접 말을 거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지옥 같은 저 밑바닥 인생들, 그들이 견뎌야 할 잔혹한 대가"라는 가사는 공연을 본 뒤에도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다른 관람 후기에서는 고음 파트가 인상적이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볼 수 있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웃는 남자〉가 더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그윈플렌은 찢어진 입이라는 신체적 특징을 가진 인물인데, 배우가 그 특징을 고려하면서도 노래의 힘을 잃지 않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나중에 이런 발성에도 캐릭터의 신체적 특징을 표현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는 것을 알고 나니, 같은 장면이 조금 다르게 보였습니다. 단순히 노래를 잘 부르는 것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그윈플렌이라는 인물을 보여주고 있었던 셈입니다.
특히 데아를 위해 극단 식구들이 함께 궁전의 모습을 말로 그려주는 장면은 화려하고 밝아서 오히려 더 슬프게 느껴졌습니다. 곧 닥칠 비극을 알지 못한 채 들뜬 표정으로 노래하는 그윈플렌과 우르수스를 보고 있으니, 이야기의 결말을 알고 있는 관객으로서는 그 장면이 더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무대가 보여준 것, 화려함 뒤에 감춰진 희생
뮤지컬 무대를 볼 때 저는 세트 디자인에 유독 눈이 갑니다. 《웃는 남자》에서 가장 인상 깊게 본 것도 공간의 대비였습니다.
빈민가 유랑극단이 사용하는 낡고 좁은 마차와 귀족들의 가든 파티 장면은 같은 무대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분위기가 다릅니다. 귀족들의 파티는 제가 보기에도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떠올릴 만큼 화려하고 밝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아름다움이 마냥 아름답게만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그 화려한 세계가 어떤 사람들의 희생 위에 만들어졌는지를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무대 위에서 반짝이는 금빛 조명조차 그저 화려한 장식으로만 보이지 않았습니다.
상원 의회 장면도 기억에 남습니다. 귀족들의 위압감을 의상뿐 아니라 무대의 높낮이로 보여주는데, 그 차이가 생각보다 직접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높은 곳에 자리한 귀족들과 그들 앞에 선 그윈플렌의 위치만 보고 있어도 두 집단 사이의 거리가 느껴졌습니다. 그윈플렌이 그 높은 자리에 올라선 뒤에도 결국 조롱의 대상이 되고 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 공간 자체가 그의 처지를 말해주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마지막 엔딩 장면은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기 어려웠습니다. 별이 가득한 듯한 무대와 함께 그윈플렌과 데아가 바다로 걸어 들어가는 모습은 비극적인 결말과 묘하게 어울렸습니다. 슬픈 장면인데도 무대는 지나치게 어둡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아름다운 장면 때문에 마지막 순간이 더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 왜 이 작품인가
러닝타임이 3시간이라고 해서 처음에는 조금 걱정했습니다. 그런데 공연이 끝나고 보니 그런 걱정이 무색했습니다. 넘버가 워낙 기억에 남았고 무대 전환도 빠르게 이어져서 공연을 보는 동안 시간이 생각보다 빨리 지나갔습니다. 오케스트라의 라이브 사운드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음악의 에너지는 충분히 느껴지면서도 배우의 가사가 묻히지 않아 이야기를 따라가는 데 불편함이 없었습니다.
공연이 끝난 뒤에도 《웃는 남자》가 계속 생각난 이유는 그윈플렌의 이야기가 17세기에서만 끝나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찢어진 입 때문에 사람들을 웃게 만드는 일을 해야 했던 그윈플렌의 모습이 단순히 과거의 비극으로만 보이지 않았습니다. 공연을 보는 내내 지금의 현실에서는 이런 모습이 어떤 형태로 나타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의 몸이나 약점을 다른 사람의 즐거움을 위해 이용하는 모습이 지금도 다른 형태로 남아 있는 것은 아닐까 싶었습니다. 공연이 끝난 뒤에도 이런 불편한 생각이 쉽게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웃는 남자》가 여러 뮤지컬 시상식에서 작품성을 인정받고 해외 공연으로도 이어진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공연을 직접 보고 난 뒤에는 수상 기록보다 제가 느낀 감정이 더 오래 남았습니다. 화려한 무대와 강한 음악에 감탄하면서도, 그 안에 담긴 그윈플렌의 삶을 생각하면 마음 한편이 불편했습니다. 어쩌면 제가 이 작품을 쉽게 잊지 못하는 이유도 바로 그 불편함 때문인지 모릅니다.
자주 묻는 질문 (FAQ)
Q. 뮤지컬 <웃는 남자>는 원작 소설을 알아야 더 재미있나요?
A. 원작을 읽지 않고 관람해도 이야기를 따라가는 데 큰 어려움은 없습니다. 뮤지컬은 그윈플렌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주요 사건을 빠르게 보여주기 때문에 처음 보는 사람도 내용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원작을 먼저 읽었다면 귀족 사회에 대한 비판이나 각 인물의 배경이 조금 더 선명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원작의 내용을 알고 공연을 보니 짧은 장면이나 인물의 행동이 다르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Q. 러닝 타임이 3시간인데 지루하지 않나요?
A. 저도 처음에는 3시간이라는 시간이 조금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보니 생각보다 시간이 빨리 지나갔습니다. 무대 전환이 빠르게 이어지고 넘버가 계속 등장해서 흐름이 크게 끊기지 않았습니다. 중간에 인터미션도 있기 때문에 3시간이라는 숫자만 보고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느꼈습니다. 다만 공연을 오래 보는 것 자체가 힘든 분이라면 이 부분은 미리 고려하는 것이 좋습니다.
Q. 캐스트에 따라 공연 퀄리티 차이가 크게 나나요?
A. 어느 정도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그윈플렌은 고음이 필요한 넘버가 많기 때문에 배우의 음색이나 가창 방식에 따라 같은 장면도 다르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특정 배우 한 명이 공연 전체를 좌우하는 작품은 아니었습니다. 우르수스와 데아, 조시아나를 비롯한 다른 배우들의 연기와 앙상블도 이야기의 분위기를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같은 작품이라도 캐스트에 따라 어떤 부분에 더 눈이 가는지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뮤지컬 《웃는 남자》를 보고 나니 ‘창작 뮤지컬은 소박하다’는 생각이 꼭 맞는 말은 아니라는 걸 느꼈습니다. 공연을 보실 예정이라면 캐스트와 좌석은 미리 확인해 보는 편이 좋습니다. 특히 오케스트라의 라이브 사운드가 상당히 크게 느껴지는 공연이라, 저는 무대와 음악을 함께 즐기기에는 중간 구역의 좌석이 편했습니다. 무엇보다 공연이 끝난 뒤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번 본 공연을 다시 보고 싶어진다는 건 저에게는 꽤 중요한 기준입니다. 《웃는 남자》는 화려한 무대와 강한 음악만 기억에 남는 작품이 아니라, 공연이 끝난 뒤에도 그윈플렌의 이야기를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