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극 ] "유리동물원" 현대희곡 보러가기: 기억극,톰,가족
‘고전 명작’이라는 말이 붙으면 괜히 어렵게 느껴져 선뜻 손이 가지 않습니다. 연극《유리동물원》도 처음에는 그랬습니다. 그런데 줄거리를 읽다가 가족을 떠나는 톰의 선택에서 눈이 멈췄습니다. 무책임한 사람인 건지, 아니면 너무 오래 버티다 결국 지쳐버린 건지 쉽게 판단하기 어려웠습니다.
기억극이라는 형식이 왜 중요한가
《유리동물원》은 기억극(Memory Play)이라는 형식을 취합니다. 기억극은 과거를 있는 그대로 재현하기보다 한 인물의 기억과 감정을 따라가는 극적 방식입니다. 테네시 윌리엄스 역시 작품의 제작 노트에서 《유리동물원》을 기억극으로 규정했습니다.
이 설정을 알고 나니 톰이 들려주는 가족 이야기가 조금 다르게 보였습니다. 저 역시 어린 시절 같은 일을 두고 부모님과 전혀 다르게 기억했던 적이 있습니다. 누가 틀렸다기보다 시간이 흐르면서 각자의 감정이 기억에 섞인 것이겠지요.
그래서 작품 속 사건도 객관적인 사실만을 보여준다기보다 톰의 기억을 거쳐 전달된 이야기로 볼 수 있습니다. 무엇은 선명하게 남아 있고 무엇은 흐릿한지 생각해보는 것도 이 작품을 읽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상징주의(Symbolism)도 빼놓기 어렵습니다. 상징주의란 사물이나 행동에 겉으로 드러나는 것 이상의 의미를 담는 표현 방식입니다. 로라가 아끼는 유리동물은 아름답지만 쉽게 깨집니다. 특히 짐에 의해 유리 유니콘의 뿔이 부러지는 사건은 로라의 변화와 연결해 생각해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톰은 왜 가족을 떠나고 싶었을까
줄거리와 인물 관계를 읽으면서 가장 마음에 걸린 사람은 톰이었습니다. 그는 구두 창고에서 일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지만, 한편으로는 시인을 꿈꾸며 집을 떠나고 싶어 합니다. 처음에는 무책임한 선택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톰 역시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책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 걸렸습니다.
여기서 내적 갈등(Internal Conflict)이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내적 갈등은 한 사람 안에서 서로 다른 욕구나 가치가 충돌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톰에게는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는 의무와 ‘내 삶을 살고 싶다’는 욕구가 동시에 존재합니다.
이런 갈등은 꼭 극적인 상황에서만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일을 그만두고 싶지만 현실 때문에 계속해야 할 때도 있고, 멀어지고 싶은 관계를 쉽게 정리하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1930년대 미국 세인트루이스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인데도 톰의 고민 자체는 그리 멀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당시의 시대적 배경(Historical Context)을 함께 보면 톰의 상황이 조금 더 구체적으로 보입니다. 시대적 배경은 등장인물의 선택에 영향을 주는 당시의 사회·경제적 환경을 뜻합니다. 작품은 1930년대 미국 세인트루이스를 배경으로 하며, 톰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현실과 자신의 삶을 살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갈등합니다.
가족을 떠난 사람은 이기적인
톰은 결국 가족을 떠납니다. 하지만 떠났다고 해서 가족의 기억에서까지 자유로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이 작품을 단순히 ‘가족을 버리고 떠난 사람의 이야기’라고만 보기는 어려워 보였습니다.
《유리동물원》은 테네시 윌리엄스의 실제 삶이 깊게 반영된 작품으로 평가됩니다. 특히 누나 로즈와의 관계는 그의 작품 세계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윌리엄스는 로즈가 전두엽 절제술을 받을 당시 곁에 있지 못했다는 사실에 오랫동안 죄책감을 느꼈으며, 연구자들은 이러한 경험이 《유리동물원》을 비롯한 여러 작품에 반영됐다고 설명합니다.
아만다 역시 한쪽으로만 판단하기 어려운 인물입니다. 남편이 떠난 뒤 두 자녀의 미래를 걱정하지만, 자신의 기대를 자녀에게 강하게 투영하기도 합니다. 가족을 위한 마음이 언제나 상대가 원하는 사랑의 방식과 같지는 않다는 점도 생각하게 됩니다.
아직 공연을 보지 않았기 때문에 톰의 선택을 어느 한쪽으로 판단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실제 무대에서 톰과 아만다, 로라의 관계가 어떻게 표현되는지가 궁금합니다.
이번 공연은 신유청이 연출하고 아만다 역에 김성령·최정원, 로라 역에 정운선·정새별·임세미, 톰 역에 장승조·권율·김경남이 출연합니다. 같은 인물이라도 배우에 따라 어떤 차이가 생길지 캐스팅을 고를 때 살펴보고 싶은 부분입니다.
처음에는 ‘고전 명작’이라는 말 때문에 어렵게만 생각했던 작품입니다. 그런데 내용을 찾아볼수록 오히려 가족 안에서 책임과 개인의 삶을 어디까지 나눌 수 있는지가 궁금해졌습니다. 공연을 보고 난 뒤에는 톰의 선택을 지금과 다르게 받아들이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유리동물원》은 2026년 10월 17일부터 11월 22일까지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공연됩니다. 관람시간은 120분이며 초등학생 이상 관람할 수 있습니다. 티켓은 OP석·R석 99,000원, S석 77,000원, A석 55,000원입니다. 예매처 : NOL티켓
출처: The Tennessee Williams Annual Revi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