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폭풍의 언덕" 사랑과 집착 (인물심리, 집착, 각색)
사랑이 깊어지면 아름다워질까요, 아니면 오히려 더 위험해질까요. 저는 《폭풍의 언덕》이라는 제목을 주변에서 꽤 오래전부터 들어왔지만 책을 읽어본 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소극장 연극으로 올라온다는 소식을 접하고 자료를 찾아보면서, 이 이야기가 단순한 연애소설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사랑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였습니다.
인물심리 — 히스클리프는 사랑한 걸까, 집착한 걸까
인물심리(character psychology)란 등장인물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를 감정과 내면의 흐름으로 분석하는 것을 말합니다. 단순히 "이 사람은 나쁜 사람이다"로 끝내지 않고, 그 행동의 출발점을 따라가는 작업입니다. 《폭풍의 언덕》에서 가장 오래 생각하게 만드는 인물은 단연 히스클리프입니다.
히스클리프는 어린 시절 리버풀에서 데려온 집시 소년으로, 언쇼 씨의 편애를 받으며 워더링 하이츠에서 자랍니다. 그러나 캐서린이 에드거의 청혼을 받아들이자 그는 조용히 떠납니다. 3년 뒤 부자가 되어 돌아온 그는 자신을 학대했던 사람들을 향해 복수를 시작합니다. 여기서 저는 한 가지 질문에 걸립니다. 그게 정말 사랑에서 비롯된 행동일까요, 아니면 사랑을 잃은 충격이 남긴 상처에서 비롯된 것일까요.
히스클리프를 무조건 악한 인물로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그렇게 단순하게 읽히지 않았습니다.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사람이 유일하게 붙잡았던 존재마저 잃었을 때, 그 감정이 어디로 향할 수 있는지를 이 인물이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물론 상처가 있다고 해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행동이 정당화되는 건 아닙니다. 그 점 때문에 오히려 이 인물이 더 불편하고, 더 오래 마음에 남습니다.
캐서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녀는 히스클리프와의 감정이 운명이라고 느끼면서도 에드거를 선택합니다. 좋은 교육을 받고 다정한 에드거와의 삶이 사회적으로 더 안전하다는 걸 알았을 겁니다. 그 선택을 배신이라고 볼 수도 있고, 현실적인 판단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저는 이 부분이 지금 시대에도 상당히 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과, 더 안정적인 삶을 선택하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흔들리는 건 그 시대 캐서린만의 이야기가 아니니까요.
집착 — 사랑보다 무서운 감정의 끝
히스클리프를 이해할 때 떠오르는 단어가 집착(obsession)입니다. 여기서 집착은 단순히 누군가를 잊지 못하는 감정이 아니라, 그 감정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자신의 행동까지 그 대상에 묶어버리는 상태에 가깝습니다.
히스클리프의 복수는 캐서린을 향한 감정이 사랑에서 집착으로 넘어간 뒤에 시작됩니다. 그는 캐서린이 선택한 모든 것들을 무너뜨리려 합니다. 에드거의 가문, 힌들리의 유산, 그 다음 세대까지 이어지는 파괴입니다. 그런데 그 파괴의 중심에는 여전히 캐서린이 있습니다. 부수는 것도 결국 캐서린 때문이고, 멈추지 못하는 것도 캐서린 때문입니다.
살면서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하지만 그게 결코 쉽지 않다는 건 누구나 압니다. 저도 그 감정이 얼마나 오래가는지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만 그 아픔이 상대방을 향한 복수의 이유가 되는 순간, 저는 개인적으로 그건 더 이상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선을 지키는 게 현실에서는 쉽지 않다는 것도 압니다. 그래서 히스클리프라는 인물이 불편하면서도 외면하기 어렵습니다.
히스클리프의 행동을 따라가다 보면 몇 가지 특징이 눈에 들어옵니다. 어린 시절 충분한 애정을 받지 못했고,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존재였던 캐서린을 잃었으며, 그 상실을 건강하게 표현하거나 받아들이는 대신 복수라는 행동으로 드러냅니다. 그래서 더 비극적입니다. 그를 피하고 싶다는 생각과, 이해하고 싶다는 생각이 동시에 드는 게 이 인물의 묘한 매력이기도 합니다.
각색 — 소설에서 무대로, 무엇이 남고 무엇이 달라지는가
각색(adaptation)이란 원작의 이야기를 다른 매체에 맞게 다시 구성하는 창작 작업을 말합니다. 소설의 모든 내용을 무대 위에 그대로 옮길 수는 없기 때문에, 연극에서는 핵심 감정선과 인물 관계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방식을 선택하게 됩니다.
에밀리 브론테의 원작 소설 《폭풍의 언덕》은 1847년 발표 이후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꾸준히 읽히고 있습니다. 단순한 연애소설로만 보기에는 구조가 복잡하고, 인물의 심리가 다층적입니다. 이 작품이 오랜 시간 살아남은 이유가 아름다운 사랑을 그려서가 아니라, 사랑 안에 숨어 있는 집착과 상처까지 건드리기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그 의견에 꽤 동의하는 편입니다. (출처: British Library)
이번 연극은 더블케이필름앤씨어터가 제작하고 MUSEat이 기획·주최합니다. 강채연이 각색을 맡았으며, 2026년 9월 8일부터 9월 27일까지 서울 대학로 큐씨어터에서 공연됩니다. 방대한 원작을 약 80분의 공연으로 옮긴다는 건, 어떤 장면을 남기고 어떤 부분을 덜어낼지에 대한 창작진의 판단이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저는 그 선택이 궁금합니다.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감정선 중 어느 지점에 집중했을지, 무대 위에서 어떻게 표현했을지가 이 공연을 보고 싶은 가장 큰 이유입니다.
서사(narrative)란 단순히 사건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인물과 사건이 연결되면서 하나의 이야기로 완성되는 구조를 말합니다. 《폭풍의 언덕》의 서사는 사랑에서 시작해 상처로 이어지고, 그것이 다음 세대까지 영향을 미치는 흐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구조가 80분짜리 연극 안에서 어떻게 살아남는지, 소극장이라는 공간이 그 긴장감을 어떻게 담아내는지를 직접 확인하고 싶습니다.
공연장은 큐씨어터 (주소 : 서울 종로구 대학로8가길 79),티켓 가격은 R석 44,000원, S석 33,000원이며 만 11세 이상 관람가입니다. 공연 일정은 화~금 오후 8시, 토요일 오후 3시와 7시, 일요일 오후 2시와 6시로 운영됩니다. 월요일 공연은 없으며 9월 25일 금요일도 공연이 없다는 점을 미리 확인해두면 좋습니다. (출처: 공연예술 통합 전산망)
자주 묻는 질문
Q. 폭풍의 언덕 원작을 읽지 않아도 연극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A. 저도 원작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 이 공연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자료를 찾아보니 각색 연극은 원작의 줄거리를 알고 가면 더 풍부하게 볼 수 있지만, 모르고 가도 이야기를 따라가는 데 큰 어려움은 없는 편입니다. 오히려 선입견 없이 무대가 전달하는 감정 그 자체를 받아들이는 방법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Q. 히스클리프를 단순히 악인으로 봐야 하나요, 아니면 피해자로 봐야 하나요?
A. 이 질문에 정답을 내리는 건 어렵습니다. 히스클리프를 악인으로만 보면 이야기가 단순해지고, 피해자로만 보면 그가 다른 사람들에게 가한 고통이 가려집니다. 상처를 가진 사람이 그 상처를 타인에게 되돌리는 과정을 이해하는 것과, 그 행동을 옳다고 인정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그 간극을 어떻게 바라보느냐가 이 작품을 읽는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폭풍의 언덕》을 알아보면서 생각한 건, 이 이야기가 오래된 것이기 때문에 살아남은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지금 이 시대에도 비슷한 감정과 관계의 문제가 반복되기 때문에 계속 다시 만들어지는 거라고 봅니다. 공연을 보기 전에 "히스클리프가 캐서린을 사랑한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상처를 끝까지 놓지 못한 것인지"라는 질문 하나를 가지고 가보시길 권합니다. 저는 공연을 보기 전부터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정해두고 싶지는 않습니다. 히스클리프가 캐서린을 사랑한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상처를 끝까지 놓지 못했던 것인지. 아마 무대를 보고 난 뒤 제 생각도 조금 달라질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