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 : 소시민,사람,강태국

세탁소가 무대라니, 얼마나 특별한 이야기가 나오겠냐고 생각했습니다.《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은 웃음을 앞세우면서도 사람들이 돈 앞에서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보여주는 연극입니다. 김정숙 작가가 쓴 이 작품은 2003년 초연 이후 오랫동안 관객을 만나 왔습니다.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 이미지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 이미지 그림]

동네 세탁소에서 시작된 소동

제목을 봤을 때 '습격'이라는 단어가 눈에 걸렸습니다. 은행도 아니고, 편의점도 아니고, 세탁소를 습격한다는 설정이 어딘가 어이없으면서도 궁금증을 자극했습니다. 직접 관람 후 느낀 건, 이 엉뚱함이 이 작품 가장 큰 무기라는 점이었습니다.

배경이 되는 오아시스 세탁소는 30년째 자리를 지켜온 동네 세탁소입니다. 주인 강태국은 특별한 능력자가 아닙니다. 그냥 매일 스팀 다리미를 잡고, 맡긴 옷을 정해진 날 내어주는 사람입니다. 이 공간에는 허름한 세탁소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수백 벌의 옷들이 걸려 있고, 그 옷 하나하나에는 각자의 사연이 배어 있습니다.

세탁소를 이용하다 보면 옷의 상태나 비용 문제로 주인과 이야기를 나눌 때가 있습니다. 저 역시 맡긴 옷에 문제가 생겨 조용히 해결한 적이 있습니다. 마침 다른 손님이 목소리를 높이며 항의하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같은 상황에서도 사람마다 대응 방식은 달랐습니다. 공연을 보면서 그때의 일이 떠올랐습니다. 무언가를 얻거나 손해를 피해야 하는 순간, 사람의 태도가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생각하게 됐습니다.

소시민들이 맡긴 옷 한 벌의 무게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거창한 악당이 아닙니다. 어리숙한 세탁 배달부 염소팔, 40년 전 어머니가 맡긴 세탁물을 찾아 희망을 품게 되는 불효자, 멀쩡한 옷을 찢고 문양을 넣는 신세대 여학생, 명품 마니아 나가요 아가씨, 무대의상을 빌리려는 가난한 연극배우. 어디서 한 번쯤 스친 것 같은 얼굴들입니다.

이들이 세탁소를 찾는 이유는 저마다 다릅니다. 하지만 죽어가는 할머니 김순임의 "세탁..."이라는 말 한마디가 퍼지면서 상황이 달라집니다. 세탁소에 엄청난 유산이 숨겨져 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자 평소에는 각자의 사정을 품고 조용히 드나들던 사람들이 한꺼번에 욕망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소시민(小市民)이란 말은 사회적으로 특별한 권력도 없고, 그렇다고 바닥도 아닌, 일상을 묵묵히 살아가는 보통 사람을 가리킵니다. 이 작품이 힘을 갖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이 소시민들의 욕망이 사악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유학을 가고 싶고, 팔자를 고치고 싶고, 엄마를 호강시키고 싶다는 꿈들입니다. 나쁘다고 할 수 없지만, 그 꿈을 이루는 방식에서 사람마다 선택이 갈립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처음에는 인물들의 행동이 단순히 욕심 많은 사람들의 소동처럼 보였는데, 막이 진행될수록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질문이 자꾸 따라왔습니다. 웃으면서 봤지만, 웃음 뒤에 약간 찔리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 유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염소팔: 어수룩한 광대 스타일의 세탁 배달부. 극의 웃음을 담당하는 중심 캐릭터
  2. 불효자: 40년 묵은 세탁물을 통해 어머니와의 관계를 되돌아보는 인물
  3. 신세대 여학생: 멀쩡한 옷을 변형하는 행동으로 세대 차이를 드러냄
  4. 나가요 아가씨: 명품에 집착하는 물질만능주의의 표상
  5. 가난한 연극배우: 화려한 무대의상과 현실의 빈곤 사이의 간극을 보여주는 인물

평범한 사람들의 서로다른 욕심

세탁소를 찾는 사람들은 저마다 원하는 것이 있습니다. 더 나은 삶을 꿈꾸거나, 가족에게 잘해 주고 싶거나, 지금의 처지를 바꾸고 싶어 합니다. 그 바람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있습니다.

희곡은 배우의 대사와 무대 지문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구성하는 문학 장르입니다. 이 작품에서는 인물들의 말과 행동이 어긋나는 순간에 웃음이 생깁니다. 관객은 그 모습을 보며 웃다가도 자신이라면 어떻게 행동했을지 생각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인물들의 소동이 우스꽝스럽게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그들의 욕심을 쉽게 비웃기 어려워졌습니다. 특별히 나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누구나 자신의 사정을 앞세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강태국이 세탁하려 한 것은 옷이 아니었습니다

작품 전체를 꿰뚫는 한 줄이 있습니다. "우리가 진짜 세탁해야 되는 것은 말이야 옷이 아니야, 바로 이 옷들의 주인 마음이야." 강태국의 이 대사는 희극적인 소동이 끝난 자리에서 조용히 남습니다.

옷의 얼룩은 세탁 공정(洗濯 工程), 즉 물과 세제, 열과 기계적 마찰을 거치면 지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욕심이나 이기심은 그 과정을 통해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게 이 작품이 단순한 코미디에서 한 발 더 나아가는 지점입니다. 웃고 나서도 인물들의 욕심이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가볍게 웃으러 간 공연인데, 극장을 나오면서 요즘 제가 물질적인 부분에 얼마나 많이 기대고 있는지 돌아보게 됐습니다. 세탁소 주인처럼 성실하게 제 자리를 지키는 사람이 점점 더 특별해 보이는 시대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카타르시스(Catharsis)란 연극을 통해 관객이 감정적 정화를 경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처음 정의한 개념으로, 무대 위의 인물들이 겪는 갈등과 해소를 따라가며 관객 자신의 감정도 함께 씻겨 나가는 과정을 말합니다. 이 작품이 20년 넘게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웃으면서 울고, 울면서 씻기는 구조입니다.

김정숙 작가의 희곡은 한국 현대 희곡 중에서도 대중성과 문학성을 함께 갖춘 드문 작품으로 평가받습니다. 공연 정보와 작품의 문학적 배경은 예스24 도서 소개 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은 아이와 함께 봐도 괜찮은가요?

A. 제가 직접 봤을 때 어린 관객들도 집중해서 따라오는 모습이 눈에 띄었습니다. 코믹한 전개가 주를 이루어서 지루함을 느끼기 어렵고, 돈과 욕심에 관한 주제가 자연스럽게 녹아 있어 아이들 교육에도 무리가 없습니다. 중학교 3학년 국어 교과서 수록 작품이라는 점도 참고할 만합니다.

Q. 극단Q의 이번 공연은 원작과 많이 다른가요?

A. 2003년 초연 이후 많은 극단이 올려온 작품이라 각색의 폭이 있지만, 극단Q는 원작의 골격을 유지하면서 자신들의 색깔을 입히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배우가 함께하는 구성 자체가 이 작품의 소시민 이야기와 잘 어울린다고 느꼈습니다.

Q. 이 작품은 코미디인가요, 진지한 연극인가요?

A. 둘 다입니다. 표면은 코믹한 소동극이지만, 그 안에는 물질만능주의와 성실함의 가치에 대한 질문이 담겨 있습니다. 웃다가 어느 순간 조용해지는 장면이 있는데, 솔직히 저는 그 순간이 이 작품의 진짜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Q. 희곡 원작을 먼저 읽고 보는 게 좋을까요?

A. 미리 읽고 가도 좋지만, 모르고 가도 충분히 즐길 수 있습니다. 오히려 대사 한 줄이 무대 위에서 어떻게 살아나는지 확인하는 재미가 있어서, 공연을 먼저 본 뒤 희곡을 읽어보는 순서도 나쁘지 않습니다.


동네 세탁소 한 켠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이렇게 오래 이어지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화려한 무대도, 특별한 인물도 필요 없었습니다. 우리 옆에 있는 사람들의 소소한 욕망과 그것을 마주하는 방식, 그것만으로 충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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